기타/부농협 국화분재배움

한국의 정원 유적지 등 답사

깃틸 2017. 8. 14. 10:57

2017.8.12-13

위치: 전남 담양군 남면, 해남읍, 보길도 부용동

코스: 소쇄원 -부용정-식영정-장흥 편백나무 우드랜드-고산 윤선도 유적지-덕음산 천연기념물 241호 비자나무 숲-두륜각-대흥사-천연기념물173호 왕벚꽃나무-완도 수목원-명옥헌(명승제58호) 배롱나무군락지-노화도 선착장-보길도 세연정-낙서제

참여자: 국화연구회 등 37명

날씨 및 일정: 흐리고 약간의 가량비에 폭염이 한풀 꺽여 일정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귀가중 일행 한 분이 노화도 전통시장에서 폰 분실로 50분 지연


삼복더위에 조선시대 한국 3대 정원 중 소쇄원과 세연정을 답사하고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 숲과 왕벚꽃나무 그리고 완도 수목원 등을 답사하기 위해 한국원예복지협회 주관 1박2일 에코 답사에 나선다.


가량비가 오락가락해서 다소 더위를 피할 수 있었고, 유지지와 수목원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예치료보조수단 우드치유, 알콜치료, 뮤직치료, 댄스치료로 힐링여행이었다.


첫 방문지 담양 소쇄원 죽림 시원함이 좋았으나 유적지 보수공사로 경내를 들어가지 못하고 구경만 하여 아쉬웠다. 식영정 기와마루와 어우려진 멋진 소나무와 성산별곡 시비는 오래 기억이 될 것 같다. 식영정(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 서하 김성원(정철의처외조당숙)이 장인 임억령에게 지어준 정자) 아래로 내러다 보이는 광주호 푸른물과 서하당과 부용정(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05년 복원)을 보니 송강 정철가사문학의 중심지였음을 느낄수 있다.


윤선도유적지 박물관 윤두서 선생의 그림과 중국 화첩이 돋보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장수가 조상의 그림을 달라고 회유하자 후손은 가문의 혼을 팔수없다며 거절하였다는 일화다. 완도수목원 산림전시관 앞 호랑가시나무 2그루 설명을 듣고(사랑의열매 재료이며, 크리스마스트리가 되기도 한다.) 수목원 나무들과 박물관에서 나무의 이모저모 해설을 들으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세연정은 우리나라 3대 연못중 제일로 구조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연못의 물의양 조절과 바위로 바다 섬을 연상케 하고 배를 띄워 노를 졋으며 즐겼다고 한다. 구들장을 놓아 주거를 할 수 있게 하였다. 현판은 북쪽으로 두어 임금을 생각하게 하였으며, 물이 고이지 않게 회수담을 만들었다.


정자 건립 기념수는 멋지게 자라 덧없는 세월을 말해준다. 아쉽게 본 루각은 17여년 전 건립하였다고 한다. 식영정과 서화당 부용정 등에 단풍나무 느티나무등이 많아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들면 다시 찾은 것이다.


※ 첫날 소쇄원 근처에서 간장게장 점심과 두륜각 석식도 맛있었고, 새벽 대흥사 예불 후 왕벚꽃나무 자생지 답사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노화도에서  매운탕 점심과 장흥 향양리 명돈가든(061-863-2020) 쌈밥 바지락회무침 정식도 괜찮았다.


□사진 

    세연정


  담양 소쇄원 입구 대나무 길에서 해설사 설명듣는 모습

  광풍각




  오곡문과 우물



  식영정 소나무


   식영정

                              식영정 마루각과 소나무


   부용당

  명옥헌







  편백숲 작은음악회

   족욕탕




  녹우정 앞

  

  비자나무


  대흥사 새벽





   수목원 조망을 즐긴다.


   박물관 내 나무분재

  황칠나무

  노화도 연락선과 다리

  세연정


  판석보


   연주하였던 곳

  물이 돌아 나갔다는 회수담

  연못 가운데 섬 당시 나무는 50-60여년 전 고사하였다고 한다.

  세연정 축조 기념으로 식수하였다는 현판 앞 소나무

  활을 쏘는 연습을 하였다는 바위

  계곡물 흐름 조절용의 돌과 배를 띄워 놓은 선착장

   태풍등 기상을 점쳤다는 어항

  장수를 빌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낙서제 앞 거북바위와 앞 산 석천정자

  여기까지입니다.


 ps: 미답지는 가을 산행계획으로 보완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산행자료=


식영정-장원봉-유듄재= 약10km 산행 개념도


  ⊙에코답사자료 모음(원예복지협회에서 다운받음)

            세연정

   완도수목원박물관

   해설사지도 놀이


  ※에코여행 참고자료(윤지도교수 글 다운로드)

 =원예치료사과정30기 에코여행 정리자료

(고산 유물관)

▣600년을 이어온 남도의 종가 해남 윤씨

❍시조 윤존부는 고려 문종(1046~1083) 때 인물이고 녹우당 가문은 12대 윤효정 에 이르러 강진을 떠나 해남에 터를 잡고 가문의 부흥에 기초를 닦았다.

❍해남윤씨의 득관조인 윤효정은 해남 정씨 귀영의 딸과 혼인하여 강진의 덕천동을 떠 나 해남 백련동 연동마을로 옮겨 왔다(녹우당)

❍윤효정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인이자 처사촌 동서인 최부에게 학문을 배웠다

-이것이 곧 고산의 가문이 영남 사림파(성리학)와 교류 되는 계기가 된다.

❍윤효정 이후로 윤구, 윤복, 윤홍중, 윤의중, 윤유기(고산의 양부) 윤선도가 과거에 급제 하여 중앙 정치에 진출하면서 해남윤씨가 명문가가 된다.

❍윤효정은 최부를 도와 해남 지역을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최근 까지도 해남윤씨는 인물이 나고 있다(윤관 대법관 등-설씨 부인의 자녀이다.)

▣어초은 윤효정

❍윤효정은 해남지역의 향리층이었던 해남정씨 귀영의 딸과 결혼하면서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다.

1501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로 출사를 하는 것 보다는 스승인 최부와 함께 해남지역 학문과 예의 고장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 하였다.

❍첫째 아들 윤구는 최산두, 유성춘 과 호남의3걸로 이름을 떨쳤으며 막내아들인 윤복 은 안동부사, 사헌부지평,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그와 윤홍중, 윤의중, 윤유기 등도 중안 정치에서 두각을 나타 내었다

❍윤선도는 강직한 성품과 해박한 지식으로 가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사부를 지내면서 효종의 총애를 받았고 많은 벼슬과 귀양을 거치면서 가문 의 명예를 높였고 전국적인 인물로 명망을 얻게 된다.

❍고산의 증손자인 윤두서는 뛰어난 그림과 글씨로 이름을 드높였으며 가문의 전통을 이 어 실학의 선구자로 인정받았고 외가의 가풍이 다산에게 이어져 다산의 실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해남윤씨는 어초은 윤효정 이래로 해남에 뿌리를 내리고 중앙 정치에 진출하면서 정 치, 학문, 예술, 경제 등의 각 분야에서 조선 문화 를 대표하는 가문이 되었다.

▣백성을 사랑한 종가

❍옥문을 세 번 열다 - 윤효정

-흉년이 들면 백성이 세금을 못내 옥에 갇히는 경우가 많았다.

윤효정은 관아에 찾아가 백성의 세금을 대신 내어 주고 풀어주는 적선을 3번 실천 하였다. - 삼개옥문적선지가(가문의 전통)

❍근검과 적선의 삶을 가르치다

-근검 적선 -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는 자식들에 근검과 적선을 하게 가르쳤다.

-근검과 적선이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백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 윤두서

-윤두서의 행장에 “마을 사람들 합동으로 나무를 벌채하고 소금을 구워 살길을 찾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밀린 빚을 받으러 갔다가 가난한 백성들의 삶을 보고 차용증서를 찢어버렸다는 미담도 있다.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 병풍을 치지 않은 것은 백성을 사랑 한 마음과 근검한 모 습을 잘 보여 준다.

▣녹우당 - 푸른 비로 사람 마음을 흠씬 적셔 주는 곳

❍녹우당

- 해남윤씨의 종택 을 일컫는다.

-녹우는 녹음이 우거진 때 비가 내린다는 뜻과 동시에 선비의 변치 않는 절개와 기상 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왕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집

-녹우당 사랑채는 효종임금이 세자 시절 자신의 사부(스승)이었던 윤선도가 수원에 있을 때 하사한 집이다. 고산이 82세 때(1668)배를 이용하여 해남으로 옮겨와 다시 지었다.

-81세 마지막 유배에서 해배 되고 1년 후 서해의 뱃길로 수원으로 가서 집 흘어서 해남으로 옮겼다.

-왕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81세 노구에 대역사를 한 열정과 정성을 높이 평가 한다.

-오늘날 녹우당이 없는 종가집 을 생각해 보면 고산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녹우당의 현판 글씨는 윤두서의 절친 옥동 이서의 유필이다.

-이서가 쓴 현판은 남도의 대표적 명문가의 전통을 꿋꿋하게 지켜온 녹우당의 품격을 더 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종가집의 사정으로 녹우당 사랑채를 가까이 볼수 없는 것이었다.

(다음 카페<한국원예복지협회>에서 사진으로 찾아 보기 바랍니다.)

▣해남 윤씨 명문가의 학문의 기본은 소학

❍어초은 윤효정 이 점필제 김종직선생 의 제자인 최부에게서 공부를 배웠다.

❍점필제 김종직선생 의 제자 중 한훤당 김굉필선생이 조선의 선비 중 소학의 최고봉이었다.(동방 5현 중 수현(으뜸의 선비)

❍김굉필 – 조광조 – 양산보 로 이어지는 사제지간도 집안의 가풍이 소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안이었으므로,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서 사약을 받고 당당히 죽음에 임한 김굉필 선생, 조선 최고의 개혁자였던 기묘사화의 조광조 선생, 500년의 한국 명원을 한집안에서 관리 보존 해온 그 기본 바탕은 소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학은 유교적인 이상적 인간상에 이르기 위한 여러 가지 기본적인 실천 덕목이 수록 된 수신 교과서이다.

▣해남윤씨 의 종가 음식

❍해남윤씨 가문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종가 음식

-비자강정, 육만두, 어만두, 감단자, 각색다식 등

▣규한록 - 종부의 삶을 담다

❍광주이씨 부인이 1834년 3월4일 보성군 대곡(한실)친정에 가있으면서 해남 시어머 니께 올린 한글 궁체로 쓴 수기체 의 글이다.

❍고산의 8대 종부인 광주이씨는 17세에 결혼하였으나 신행 전에 홀로 되어 남편 없는 종가 시댁의 종부로서 집안의 중흥을 이루었다.

❍조선 후기에 부녀자가 쓴 가사를<내방 가사>라고 한다. 주로 영남지방에서 작자 미상으로 전해져 오는 것이 있다.

❍호남에는 해남 윤씨가의 광주이씨가 지은 <규한록>이 유일 하다.

❍규한록 은 1834년(순조34년3월)에 순 한글로 쓴 작품으로 광주이씨가 잠시 친정집 에 가있을 때 시어머니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아 편지 형식으로 쓴 것으로 두루 마리처럼 말려져 있는 것을 펼치면 13m로 200자 원고지 150매 분량에 이른다.

❍종가의 살림을 책임지는 종부의 삶이 빠짐없이 기록 되어 있어서 당시 양반들의 생활 양식과 규범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회적으로 제약이 많은 여성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알수 있는 중요한 자료 이다.

▣고산의 시호는 忠憲(충헌)

❍忠-몸을 받쳐 왕에 충성하고

❍憲-많이 들어 여러 가지에 능한 시조 문학의 대가 고산 윤선도

▣고산 윤선도

❍용모(고산 선생년보)

-용모가 단정하고 안색이 엄숙하고 굳세어 대하는 사람이 바로 볼 수가 없고, 쏘 아 보는 눈빛이 선영하다

❍강직함(효종실록)

-윤선도는 세상 사람들이 청탁하고 끌어 주고 하는 꼴을 본받지 아니하고 시골에 서 본분을 지켰다.

❍풍수지리(정조 고산선생유고)

-윤선도는 세상에서 오늘날의 무학대사 라고 부른다. 풍수지리의 학문에 대하여 본 래 신안의 실력을 갖추었다.

❍문학 (박준규 교수의<유배지에서 부르는 노래>에서)

-모양과 색깔과 향기가 3박자로 갖추어진 값진 꽃이다.

(위당 전인보 <조선 고전 해설>에서)

-호남 산수 간의 야경을 귀신같이 그려 놓았다.

▣오우가

❍금쇄동에서 쓴 글이다.

❍손수 엮은 <산중신곡>의 작풍에 실려 있다. 오우가가 대표작이다.

❍글머리 서수에 이어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 등의 오우를 차례로 읊은 6수의 연 시조 이다.

▣어부사시사 - 시, 경 그리고 흥의 노래

❍세연정에서 쓴 글이다.

❍순 국어체이며 춘사, 하사, 추사, 동사 등 네 편의 노래를 제작하였으며 각편은 각각 10수로서 총 40수의 연작 형으로 구성 되어 있다.

▣윤선도의 원림

❍고산은 자연을 사랑하면서 손수 정원을 설계하여 만들어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종합 예술가였다.

❍그 대표적 원림이 보길도 부용동의 세연정, 해남의 금쇄동 과 수정동이다.

❍풍부한 자연 사랑의 마음과 예술적인 심미안이 천재적인 소질을 갖추었다.

❍은둔과 세상을 피해 살고자 했다.

❍현실 정치의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다. 정원을 만들고 연못을 조성하면서 갖가지 도학 적 사상을 갖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부터는 해설의 해설을 메모한 것을 정리 한 것임

❍가오리 바위 - 세연정 윗머리에 놓인 바위,- 어린이들에게 바위를 타고 놀게 한 자리

❍세연정 - 물의 정원-약 2만여편에 25채의 정자를 지은 한국에서 최고의 토목, 조경 설계로 조성 된 명원

❍판석보 - 보를 판자 돌를 깨어서 굴껍데기+석회+갯벌 진흙을 이겨서 복판이 비어 있는 공병(울림터)로 만들어 비가 많이 올 때 보로 물이 넘치면 물 소리를 크게 듣기 위하여 만든 보이자. 옥소대로 가는 길이다.

❍세연정을 만드는데는 8년이란 기간에 노비 등 400~500명이 동원 되었다.

❍세연정으로 들어오는 물은 5곳이고 나가는 물은 3곳으로 항상 같은 높이의 물이 있도록 설계 되었고. 들어오는 물길을 ㄹ자 모양이라 불순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설계 되었다.-세계의 조경가들이 돌아보고 놀라워하는 과학적 설계이다.

❍세연정 앞에 서 있는 큰 소나무는 세연정을 짓고 기념식수로 심은 나무 일 것으로 추측 한다.

❍무민당

❍낙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