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전라남도

월출산국립공원 월각산에서 문필봉을 찍고 주지봉 넘어 왕인박사 유적지까지 산행

깃틸 2015. 11. 25. 11:01

2015,11,24.

위치 전남 강진군 학산면, 영암군

산행 거리및소요시간: 약12km 6시간(암릉구경으로 시간지체)

코스: 대월리사무소-시비-악어바위-장군바위-420봉-411봉-323봉-문필봉갈림길-월각산(456m)-땅끝기맥 분기점-문필봉-주지봉-죽순봉-책굴-문산재-죽전마을

 

전남 강진 대월리사무소 옆 마을 수호수 수령450년 느티나무에서 출발하여  한백당곽기정선생 시비공원 앞 들머리로 올라 간이체육장을 지나니 등산로를 막아놓았다. 왜 등산로를 막았는지 이유 설명도 없다. 옆 사이길로 들어 안부 정자를 지나니 암릉미가 멋진 바위들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슬랩바위 지대 위 악어바위서 입에 손을 넣는 포지션을 취해 인증샷을 남긴다. 다시 오르니 장군바위가 우뚝 서 있는 곳을 지나 능선 안부에서 저편 멋진 암봉을 올라가려다 위험하여 되돌아 나와 우회하여 420암봉에 올라서 암봉들의 위용에 압도되고 저편 능선에는 월출산 기암괴석 능선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저 디카를 눌러된다. 

 

 이어 411봉과 무명봉 몇개를 지나 밤재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분기점에서 월각산 정상을 갔다 되돌아 나와 땅끝지맥을 따라 선두에 나서 홀로 호젓한 능선길을 가면서 밭 같은 평지(폐헬기장)를 내러서 낙옆 밟는 소리를 들으며 우측으로 월각산 지나온 능선을 좌측으로 문필봉을 보면서 주지봉을 향하여 호젓한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홀로 된 산행에서 찾아드는 사색이랄까 문뜩 산에 동화된 느낌이든다.

 

무명봉을 우회하여 도갑산에서 월출산 구정봉으로 이어지는 땅끝지맥 갈림길에서 뒤 보일듯 말듯 따라 오던 일행 2명이 보이지 않는다.  미지의 산속을 홀로 가니 호랑이가 어슬렁 걷으면서 울음을 내는 형상이 머리에 스친다. 배에 힘을 끌어모다 기운을 어 릉릉하며 크게 토하는 울음을 하였더니 기운이 솟고 산의 지배자가 된 듯하다.

 

문필봉과 주지봉 갈림길에서 문필봉이 잘 보이는 전망 바위에서 쉬고 있는데 뒤따르다 사라진 일행이 다가와서 축지법을 쓰는기요?. 왜냐고 하였더니 이봉우리 번쩍 저봉우리 번쩍하며 나타 났다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나이 60에 무리하지 않게 내 페이스대로 걸었을 뿐이데요 했더니 자기도 젊었을 때는 백두대간을 하면서 겁이 없이 걸었다고 한다.

 

문필봉은 바위가 우뚝 멋지게 솟아 정상까지 20여미터 밧줄을 타고 오른 후 바위를 잡고 이리저리 좀 위험하게 올라 좀 넓은 너럭바위에 선다. 저멀리 산그리매와 월출산 노적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조망과 아래로 펼쳐지는 세상을 보니 신선이 된 듯하다. 우리가 보통 밑에서 그렇게 오르고 싶어 위험을 감수하고 정상에 올라보면 밋밋하여 조망도 없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문필봉 정상은 멋졌다. 

 

문필봉 암릉에 올라 정상 조망을 즐기고 내려서는데 빈팻트물병과 캔 쓰레기가 바위 틈에 있어 주워 쓰레기 봉지에 넣고 올망졸망 암릉 길 조망을 즐기며 간다. 몰지각한 사람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등산로 주변 쓰레기를 주웠더니 한 봉지가 된다. 죽순봉에 서니 건너편 월출산 아름다운 암릉 능선을 보면서 너럭바위 아래에 내러 산행을 접고 왕인석상과 책굴을 보고 문산재 약수로 목을 적시고 지침바위 앞 안내문을 읽어본다.

 

문산재와 양산재는 죽정마을 뒷산 문필봉과 주지봉 중턱에 있는 것으로 조선시대 때 와서 서당을 열고 '문산재'라 했다. 이곳에 큰 인물이 나와 공부하려는 사람이 몰려 옆에 양산재를 지었다고 한다. 우물터가 있고 약수물이 흘려내리며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책굴은 문산재 뒷편 너럭바위 아래 바위 굴이 있는데 왕인박사가 책을 쌓아두고 이용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입구로 굴에 들어가 보니 2평정도 되고 하늘로 구멍이 보이며 비가 오면 비가 바위를 타고 내려 책을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서당이 지어지기 전에 이용했을 것이다. 당시 공부할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엿 볼 수 있다.

 

왕인석상은 왕인박사가 일본 왕실에 백제문화를 전하기 위해 떠난 후 책굴 옆에 후대 사람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조각했다고 한다. 조각상을 보니 오랜 세월이 묻어난다. 지침바위는 종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자급자족을 위해 주변 자생 닥나무를 채취하여 이 바위에다 놓고 찧어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여 많은 학자와 문필가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왕인박사의 탄생지인 성기동과 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聖泉)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遺墟碑)가 세워져 있다. 또 월출산 중턱에는 박사가 공부했다고 전해오는 책굴(冊堀)과 문산재(文山齋) ·양사재(養士齋)가 있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계서 공부하면서 고향 인재를 길러 낸 곳으로 매년 3월 3일에는 왕인박사의 추모제(追慕祭)를 거행하였다고 한다. 책굴앞의 왕인박사 석인상(石人像))은 박사의 후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라 한다.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뒤돌아 보았다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상대포(上臺浦)는 박사가 일본을 떠날 때 배를 탔던 곳으로 당시의 국제 무역항이었다 왕인박사는 백제인으로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빙으로 논어 10권, 천자문 1권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 해백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응신천황의 신임을 받아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어 그의 후손은 대대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일본 문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게 되었다. 일본의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는 화이길사(和邇吉師), 일본서기에는 왕인이라고 그의 이름이 나타나있다.

왕인박사는 논어와 천자문을 전한 것은 물론 기술공예의 전수, 일본가요의 창시 등에 공헌함으로써 일본 황실의 스승이며 정치고문이 되어 백제문화의 전수를 통하여 일본 사람들을 계몽한 일본문화사상(日本文化史上)의 성인(聖人)으로 일본 비조문화(飛鳥文化)의 원조가 되었다. 이 유적지는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사당을 비롯한 유적지정화사업을 시작으로 왕인공원 등 성기동 문화관광사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문산재 입구 주변에  이제 꽃이 피려는 나무 이름은 뭘까 하면서 늦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면서 죽정마을에 이른다. 시간이 있으면 왕인박사 유적지 힘찬묏길을 걸어보고 도갑사도 보고 싶지만 개천에 땀을 씻고 공영주차장으로 가니 창원 참산악회와 다솜산악회 대림관광버스 2대가 뒷풀이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벌교 꼬막 비빕밥을 맛있게 만들어 뒷풀이를 즐기니 어느듯 어둠이 내린다. 

○산행 사진

   악어바위

 

  한백당 시비공원

 

 

 

   올라온 능선(좌측능선)

 

 

  악어바위

   장군바위

 

 

 

 

 

 

 

 

 

 

 

 

 

   월각산에서 문필봉 가는 이정표

  월각산 정상 표시판

   문필봉을 배경으로

   문필봉 정상 우물샘

 

 

   문필봉

   주지봉 정상

 

 

 

 

 

   우측 문필봉

 

  전망대에서 당겨본 왕인박사 유적지

  건너 월출산 능선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책굴 위 너럭바위

 

 

 

◎산행개념도